세계 경제가 나아갈 방향과 각국 사이의 경제정책에 대한 협조 및 조정에 관한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주요 7개국의 모임으로,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캐나다, 일본이 회원국입니다. G7의 G는 '그룹(Group)'의 첫 글자로, G7에는 세계 경제를 선도하는 7개국이 가입돼 있습니다.
이들 국가의 모임은 1973년 1차 오일쇼크에 대한 대책 마련을 위해 미국, 영국, 프랑스, 서독, 일본의 5개국 재무장관이 모인 G5 회의로 시작되었고 1975년 2차 오일쇼크를 거치면서 G5 정상회의로 승격됐습니다. 이후 이탈리아(1975년)와 캐나다(1976년)가 참여하면서 G7이 됐습니다.
러시아는 1991년 구소련으로 준회원처럼 참여하였는데 1997년 제23차 G7 정상회담에 정식으로 참여하면서 G8으로 확대되었습니다. 다만 정치 분야는 G8 중심이었지만 경제 분야에서는 기존 G7 체제가 유지됐습니다. 그러다 2014년 3월 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크림반도를 합병하자 G7 정상들은 러시아의 G8 참가자격이 일시 정지되었고, 2017년 1월에는 러시아가 G8 탈퇴를 선언함에 따라 서방선진 7개국(G7) 체제를 다시 갖추게 되었습니다.
G7은 매년 재무장관 ・ 중앙은행총재회의와 정상회담을 개최하고 있습니다.
1. G7 회의
재무장관 ・ 중앙은행총재회의는 각국의 재무장관과 중앙은행 총재가 참여하는 회의로 1년에 2~3번씩 연석으로 회동하여 세계 경제 및 금융에 관한 주요 이슈와 각국 간 경제정책 협조 등을 논의하고 있습니다.
2. G7 정상회담
정상회담은 각국 대통령과 총리가 참가하는 가운데 1년에 한번 개최되며 세계의 주요 의제 등을 논의합니다.
G7의 성격
G7은 초기에는 세계 경제의 당면과제 해결방안 모색에 초점을 두고 있었으나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 발발(1979년 12월) 후 1980년 이탈리아 회의에서 서방 세계가 단결하여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한 소련군에 철수를 요구했던 것을 계기로 정치와 외교 분야까지 그 분야가 확대되었습니다. 냉전이 종식되기 전까지는 미국의 주도로 공산권 진영에 맞서면서 단결을 과시하는 세력 역할을 했으나, 화려한 외형에 비해 합의 결과의 구속력이 없었기 때문에 비판 또한 적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점차 신흥국이 부상하게 되고 2005년 영국에서 열린 G8 정상회담을 계기로 중국·브라질 ·인도·멕시코·남아프리카 공화국 신흥 5개국을 포함한 G13이 탄생하였습니다. 그러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에는 기존의 장관급 회의였던 G20이 정상급 회의로 격상됐습니다.
선진국 수뇌회의라고도 하며, 통칭 서밋(Summit)이라고 한다.
1. 목적과 참가국
세계정세에 대한 기본인식을 같이하고, 선진공업국 간의 경제정책조정을 논의하며, 자유세계 선진공업국들의 협력과 단결의 강화를 목적으로 합니다.
참가국은 프랑스, 미국, 영국, 독일, 일본, 이탈리아, 캐나다이며 그 외에 EU(유럽연합)의 의장국이 참가합니다.
1973년 백악관 도서관에서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재무장관이 세계 금융 이슈를 논의하면서 초기 참가국이 되었다. 1975년 일본의 참여로 G5 재무장관 체제가 형성됐으며 같은 해 이탈리아가 참여했습니다. 프랑스 재무장관이었던 발레리 지스카르 데스탱(Valéry Giscard d'Estaing) 이 대통령으로 승격되는 등의 사유로 기존 재무장관회의는 정상회의로 격상됐고 프랑스 랑부예(Rambouillet)에서 최초의 G6 정상회의가 열렸습니다.
이후 1976년 미국의 강력한 희망으로 캐나다가 참여하여 G7로 확대됐습니다. 1998년 버밍엄 회의에서 러시아가 정식회원이 됨으로써 G8 체제가 됐습니다. 그러나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영토분쟁 과정에서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자국 영토로 강제 합병한 사태에 대한 제재 조치의 일환으로 2014년 G7 국가들은 러시아의 G8 회원 자격을 잠정 정지했습니다.
2. 회의장소
1975년 프랑스의 랑부예에서 처음으로 열린 후 미국(1976)·영국(1977)·서독(1978)·일본(1979, 도쿄)·이탈리아(1980, 베네치아)·캐나다(1981, 오타와)·프랑스(1982, 베르사유)·미국(1983, 윌리엄즈버그)·영국(1984, 런던)·서독(1985, 본)·일본(1986, 도쿄)·이탈리아(1987, 베네치아)·캐나다(1988, 토론토)·프랑스(1989, 아르 아르세)·미국(1990, 휴스턴)·영국(1991, 런던)·독일(1992, 뮌헨)·일본(1993, 도쿄)·이탈리아(1994, 나폴리), 캐나다(1995, 핼리팩스), 프랑스(1996, 리옹), 미국(1997, 덴버) 순으로 회의장소를 옮겨가며 진행한다.
3. 경제력
서방 7개국의 인구는 세계인구의 14%를 차지할 뿐이나, 부(富)에 있어서는 3/5을 점유하고 있습니다. 또한 세계은행의 통계자료에 의하면 GNP(국민총생산)는 세계 전체의 56%를 차지하며, 1인당 GNP(국민총생산)는 세계 평균 GNP의 4배에 달합니다.
4. 내용
석유파동 이후 세계경제의 당면과제를 해결하는 방안을 모색하고자 1975년 프랑스의 랑부예에서 시작된 이 회의는 1979년 도쿄회의까지는 주로 경제문제, 특히 인플레이션·경기(景氣)·무역·통화·에너지·남북문제만 공식 논의되었습니다. 그러나 1980년 이탈리아의 베네치아 회담부터는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항공기 납치문제·인질문제·난민 문제 등을 주요 의제로 다루기 시작하였습니다. 1981년 캐나다의 오타와 회의에서 발표한 10개 항의 '정치 성명'은 세계의 전반적인 주요 문제를 망라함으로써 정상회담으로 변질된 느낌을 주게 되었으며, 1982년 베르사유 회담 역시 경제회담으로 시종일관하였으나 뚜렷한 성과 없이 서로의 입장표명으로 끝났습니다. 또한 1983년 5월 29일 미국 윌리엄즈버그에서 개최된 9차 회담에서는 미국의 퍼싱Ⅱ 미사일의 서유럽 배치에 합의하는 한편, 인플레이션 감소, 금리인하, 예산적자 감축을 위한 정부지출의 억제, 고용증대, 환율 안정화 등을 통해 지속적인 경제성장과 함께 경제 회복세의 확산을 추구하기로 합의하였습니다.
1984년 10차회담에서는 개발도상국의 채무부 담을 경감하고, 국제 테러 및 이란·이라크 분쟁에 관한 성명을 발표하였습니다. 1985년 11차 회담에서는 인플레이션 없는 경제성장을 위한 역할분담에 합의하고, 환경문제를 토의하였습니다. 1993년 19차 회담에서는 우루과이라운드의 연내 타결을 결의하였으며, 1994년 20차 회담에서는 WTO의 발족과 브레튼우즈 체제의 재활성화를 강조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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